지난 2년간의 회고록

retirement

19년에 와서야 지난 2년을 되돌아보려 하니 어디서 부터 적어내려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이야기하려니 정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컨테이너로

처음 작전정보통신단으로 전입왔을 당시 두 부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버를 관리하는 일명 관제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계개발실이었습니다. 작전정보통신단은 매우 중요한 서버가 있는 곳이라 서버가 죽지 않게 24시간 서버를 관제하고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로테이션 근무(크루 근무)를 하는 부서였고 개발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발 업무를 해 보고 싶기도 했고, 밤새는걸 못하는 체질이라 망설임 없이 체계개발실을 택했습니다.

당시 체계개발실에는 여러 팀이 존재했는데 제가 배정받은 팀은 16년에 신설된 팀이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팀이라도 체계가 들어온 이상 각종 장비를 들어놓을 사무실은 있어야 하니 메인 건물 뒤에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규모가 큰 컨테이너 형태의 임시 사무실을 세워두었습니다. 그 마저도 많은 팀을 수용 할 수가 없어 두 팀이 하나의 사무실을 나누어 썼습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습니다. 천장에 붙어있는 시스템 에어컨 두 대도 있었고 장비(서버)를 위한 간이 방에 전화선/TV선 모두 들어왔습니다. 최대 단점은 바로 앞이 흙바닥이다 보니 밖을 나갈 때마다 모래와 흙이 사무실 내로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흙을 지속적으로 빨아들이다 보니 청소기는 고장난 지 오래였고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바닥을 쓸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면 마치 비가 온 것 마냥 흙과 물이 섞여 더 더러워졌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컴퓨터 본체 안에 갈수록 모래가 쌓여 전원 버튼을 누르면 마치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역 전 2년동안 흙바닥에 뒹굴었던 본체를 윈도우 재설치를 위해 정비반으로 가져갔을 때 왜 이리 더럽냐며 욕먹은 기억이 납니다.

생활하기에 조금 불편한 사무실이었어도 굉장히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두 팀이 하나의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다 보니 다른 사무실보다 인원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왁자지껄 조용한 날이 없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고 회식도 자주 했습니다. 점심에는 여러 핑계를 대며 미군 복지시설에 우르르 몰려가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고, 팀원 누구 하나가 생일이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유치하게 생긴 케이크를 사서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두 팀 통틀어 간부/영외자는 스무명 정도에 병사는 저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모두 잘 해주시고 잘 사주셨습니다. 또 메인 건물 뒷 편에 위치한 곳이라 팀장 급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도 않았던 터라, 메인 건물 다른 팀 사람들도 팀장들을 피해 많이들 피난을 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덕에 많은 간부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컨테이너 쓸 때의 사무실이 더 재미있었고 추억이 많아서인지 새 건물로 이사한 후에도 같이 쓰던 팀 사무실에 자주 놀러다며 지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 있어 조금 더 빠르게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역 프로젝트, ERITER

그래도 그 때는 처음이라 뭔가 열정이 있었는지 뭐든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맡았던 업무는 기존 프로그램의 사용자 입력 부분을 다중 쓰레드로 변경하는 일이었습니다(배경 이야기 링크). MFC 기반 프로그램이었는데 MFC는 거의 처음이라 두꺼운 책 하나를 가지고 이해하고 기존 코드 분석하는데 머리깨지던 기억이 납니다. 이 부분이 무슨 일을 하는 코드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사람도 없어 일일이 TRACE 찍어서 프로그램이 돌아갈 때마다 찍힌 로그를 보고 파악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었습니다. 제대로 된 방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와서 보면 나름 공부가 되긴 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다 만들고 테스트 단계에 들어갈 때에 체계개발실장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뀌었고, 쓰지도 않는 체계를 뭐하러 개발하느냐고 하며 프로젝트를 폭파시킵니다. 2달 정도 삽질한게 그렇게 날라갔었던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두 번째로 맡았던 업무는 기존 체계의 구조 변경(‘성능 개량’이라는 용어를 씁니다)이었습니다. 2학년 1학기만 마친 학부생이, 그것도 전자공학 전공이 웹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당시에 제가 속한 팀에서는 비전공자가 만들어 둔 기존의 체계를 계속 생명 연장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체계였습니다. 웹 페이지를 통해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업데이트’만’시키는 체계였습니다. 듣기로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필요에 의해 단순하게 책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으니 고급 기능이 있을리 만무하고, 책의 예제에서 조금 더 나아간 수준의 체계였습니다. 제가 처음 받아든 웹 소스이지만 정말 보기가 힘들고 어지러워 소스 분석하면서 욕했던게 생생합니다. 정말 아주 작은 기능이라도 수정하려면 모든 소스를 다 뒤져가며 수정할 부분을 찾아야 했었습니다. MVC1 모델이라 기능에 따른 코드 구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소스 분석하고 기능 테스트를 진행했었습니다. 결국 17년 말에 계속해서 이 소스를 가지고 유지보수 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판단하에 저에게 떨어진게 MVC2 모델로 변경하는 프로젝트, Project ERITER 였습니다.

프로젝트 네이밍은 별 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전역때까지 진행될 프로젝트 같아 ‘retire’ 철자를 거꾸로 적어 둔 겁니다.

Java/JSP/Javascript와 Servlet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해, 체계에 대한 이해,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설계 등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진행했다면 조금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Spring 프레임워크를 이용하여 고급 기능을 구현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ERITER 프로젝트는 저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였거든요. 기존의 시스템이 보기 힘들 정도로 기능 구분 없이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리팩토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판단되었습니다. 페이지도 자바코드가 뒤섞여 보기 힘들어 클라이언트 부분만 따로 빼기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시간적 제약도 있었습니다. 결국엔 제로-베이스부터 코드를 짜기 시작합니다.

데이터베이스 테이블부터 뜯어 고치고 서버에 요청해 처리하던 것을 자바스크립트로 변경하고, 일련의 작업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존의 체계 기능과 UI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버 내부만 교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용자가 오래 체계를 이용하면서 적응해버렸기 때문에 페이지 구조와 동작은 그대로 유지해야만 했습니다. 서버 요청 부분이야 제가 임의로 규칙을 만들어두면 되지만 페이지는 처음부터 다시 다 그려야 했습니다. 기존 코드를 도무지 재사용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JSTL 라이브러리도 없어 모두 자바코드 스크립틀렛으로 떡칠하다 결국 다른 쳬계에서 라이브러리를 가져와 적용했습니다. 보안 문제가 있어 군에서는 외부 라이브러리를 자유롭게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외부교환체계를 통해 들여와야 하는데 인가 절차는 꽤나 오래걸리고 될지 안될지도 불확실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사용 중인 체계에서 라이브러리를 빌려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병장으로 진급했고 제 후임자가 생고생을 하지 않도록 코드의 의도와 역할을 적어 둔 300페이지 가량 되는 문서를 만들어 두고 왔습니다. 난장판이었던 소스를 처음 받았던 그 당황스러움을 기억하면서 후임자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으로 작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금 쯤 제가 작업한 코드 위에 다수 기능이 추가되어 문서가 소용 없게 되었으리라 예상해봅니다. 군대라는 곳이 산출물을 잘 만들어두는 곳이 아니니 업데이트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뭐, 군 생활 동안 무엇 하나는 남기고 가니 의미 있는 군 생활 이었을까요.

2019.12. 업데이트: 전역 후 친했던 간부님들과 후임들 오산기지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개발실장님을 설득했는지 ERITER 위에 텐서플로우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작전정보통신단은 타 군에 비해 대다수가 전기전자/컴퓨터 관련 분야가 전공인 사람이 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관련 직군에서 종사하다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 보니 약 100명 정도의 인원이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같습니다.

오기 이전에도 프로그래밍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60대 기수에서 한동안 활동이 많이 줄었고 이름뿐인 동아리였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죽어가는 동아리를 살려 놓으며 이름 붙인것이 ‘LINK’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자신이 공부하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스터디를 진행하며 시작했던게 지금은 동아리 차원에서 기업 탐방도 가더군요.

취창업 동아리로 인정되어 인트라넷 전용 게시판도 만들어 주어 자신이 공부한 주제를 게시판에 블로그 포스트 형식으로 올려두는 방식으로 활동했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전정보통신단 부서마다 환경이 달라 조금은 애로사항이 있었던 점이랄까요. 개발 환경이 없는 부서는 사지방에서 구름IDE를 이용해 공부하고 프린트하여 인트라넷 컴퓨터에 일일이 옮기고 이미지 스캔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던 반면, 제가 속해있던 개발실이나 서버가 존재했던 부서는 Visual Studio, GCC나 Eclipse로 쉽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사지방에서의 강력한 툴인 구름IDE가 존재했었기 때문에 보안상 군 내에서 쉽게 가져다 쓸 수 없는 환경에서도 다양한 공부가 가능했었습니다. 그 덕에 1회 공군 해커톤에도 참가해 보기도 했고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Hadoop도 세팅해보고 Spark도 세팅해보고 회귀 분석 라이브러리도 써 보고요. 인트라넷에서만 활동했던 것이 아니라 LINK 슬랙도 만들어 공부했던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slack

프로그래밍 동아리 LINK Slack

인트라넷의 환경 위주의 활동이다 보니 공부했던 흔적들을 모두 두고 와야 했다는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있는,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게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 생활을 그런 사람들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부락사회복지회관에서의 봉사

송탄 시내에 나가면 부락사회복지회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복지회관입니다. 주민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 주로 아이들이 배우러 옵니다. 공군 작전정보통신단은 복지회관 내 청소년영어회화 동아리 및 온새미로 청소년공부방 학생들을 위한 학습지도 봉사 참에 참여하는 내용의 협약이 되어있습니다.

봉사활동 인원은 매주 토요일에 12시 즈음 4명이 한 조가 되어 봉사활동을 나갑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평일 외출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때라 주말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습니다. 송탄 시내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고기도 굽고 게임 한 판 하고 올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부대 내에서도 휴대폰을 사용하니 좀 덜 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밖에 나갔다 오는게 부대 내에 있는 것 보다는 더 값진 것 같습니다. 제한된 인원만 나갈 수 있어 작전정보통신단 내 모든 병사가 참여할 수는 없고 온새미로라는 12명 정도의 봉사 모임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진행했었습니다.

그 곳에서 약 7개월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었던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친구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소리지르고, 같이 활동 해 보자고 빌어도 하기 싫다는 친구도 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팽이 장난감 자랑하느라 바쁜 친구,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하던 친구 등 왁자지껄 조용할 때가 없는 교실이었습니다. 간혹 통제가 안되는 경우도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글쎄요, 이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자료를 준비하고 대화하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며

컨테이너 생활도 해 보고, 전역 프로젝트도 진행해 보고,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도 활동해 보고, 해커톤에도 참가해 보고, 밴드부 활동도 해 보고, 봉사활동도 해 봤습니다. 한편으로는 2년 동안 무언가 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한 게 많은 것도 같습니다.

처음에 단순히 카투사도 떨어지고, 그럼 그냥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공군에 지원했지만 역시 3개월은 깁니다. 그래도 돌아가서 다시 육군과 공군 중에 선택해야한다면 망설임없이 공군에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20.08. 무엇보다 여러모로 잘 대해주신 전역하신 간부님들, 팀원 분들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좋은 경험을 해보고 전역했습니다. 취업, 좋은 소식들 모두 축하드립니다.